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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셀트리오니즘 – 전예진

by 재테크리뷰 2021. 10. 17.

평균 연령 31.8세, MZ세대를 믿고 맡기는 경영진, 비상식적일 정도로 파격적인 스톡옵션 제도. 바이오 업계의 이단아 셀트리온은 어떻게 성공했을까? 많은 이들이 알고 싶었던 그들의 비밀이 공개된다.

 

# 기존 사고방식으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셀트리온

대한민국 제약 바이오 기업 중 최초로 해외 시장에서 성공하며 K바이오의 저력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는 셀트리온은 2019년 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바이오시밀러 개발사 셀트리온, 판매사 셀트리온 헬스케어, 합성 의약품 개발사 셀트리온제약 등 삼각편대로 구성된 셀트리온 그룹의 매출은 2조 원, 시가총액은 202011월 기준 57조에 달한다. 셀트리온의 성공으로 창업자 서정진은 세계적인 부호 반열에 올랐다. 20207월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서정진의 자산 규모는 98억 달러, 한화로 약 12조 원으로 세계 177위이다. 20년간 셀트리온의 최고 경영자, 이사회 의장, 해외영업 총괄로 전 세계를 누비며 왕성하게 활동했던 서정진은 65세를 앞둔 2020년 12월 31일 회장직에서 물러난다. “회장은 왕이 아니다. 정년을 지켜야 하는 임원일뿐”이라는 게 그의 은퇴 이유였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전예진이 쓴 셀트리오니즘에서는 셀트리온이 바이오의약품 시장의 판도를 바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의 내용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셀트리온은 기존 사고방식으로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대우자동차에서 최연소 임원으로 승진하며 성공가도를 달렸으나 IMF 경제위기로 실업자가 된 서정진이 동료들과 5,000만 원으로 바이오벤처를 창업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은 생명공학 분야의 일자무식이었을 뿐만 아니라 스펙도 변변치 못했다. 명문대 출신은커녕 집안이 좋거나 재산이 있는 사람도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평범한 이력을 가진 오합지졸 백수들이 셀트리온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셀트리온은 대담하게도 수천억 원이 투입되는 의약품 복제약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뛰어들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능력으로는 성공 확률이 10%도 되지 않아서 무모한 도전으로 여겨졌다. 그럼에도 셀트리온의 주주들은 셀트리온이 세계 최고의 바이오 회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고 공매도로부터 셀트리온을 지키기 위해서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이전 상장을 직접 추진했다. 결국 셀트리온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바이오시밀러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냈다. 저자는 퇴직금, 전세금도 모자라 전 재산을 셀트리온에 투자하는 주주들의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고 바이오 업계의 이단아였던 셀트리온의 성공 원인을 취재했다. 저자는 2년 동안 창업자 서정진 회장과 그의 가족, 친구, 셀트리온 전 현직 임직원의 인터뷰와 인천 송도 연구개발 센터와 생산 공장뿐만 아니라 유럽의 판매 지사와 현지 병원 탐방, 그리고 경쟁사 관계자까지 접촉해서 셀트리온이 어떻게 일하며 어떻게 다르게 해내는 지를 집중 탐구한다.

 

# 그들은 왜 속도에 집착할까?

셀트리온을 혁신적 회사라고 말하기 어렵다. 복제약인 바이오시밀러 개발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사람들이 보기엔 원본 의약품을 베낀 모조품일 뿐이다. 서정진은 셀트리온이 처음부터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현실 자각 능력이 뛰어났던 그는 혁신 기술의 부재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뛰어넘을 방법을 마련했다. 그것은 스피드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삼성도 처음에는 패스트 팔로우(fast follow), 즉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을 빠르게 쫓아가는 전략으로 승부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이야 말로 간과하기 쉬운 요소이다.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제약 업계에서는 시간을 버는 자가 돈을 번다. 셀트리온은 아시아 최초이자 최대의 동물세포 배양 공장을 가진 덕분에 제품의 개발부터 생산에 걸리는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었다. 셀트리온은 연구개발뿐만 아니라 구매, 영업, 판매 및 마케팅 등 모든 분야에서 의사결정 과정이 단순하고 빠르다. 중요한 사안은 보고서를 올리고 회의를 소집할 필요도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한다. 매사에 신속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는 조직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셀트리온에서는 1년에 많아야 두 번 정도 인사발령을 하고 조직 개편도 필요에 따라 속전속결로 이뤄진다. 회장이 수시로 상황을 점검하고 문제가 터지면 그날 바로 해결하는 게 셀트리온의 습관이자 경쟁력이다. “보고서 나온 지 30분 만에 특허 신청할 수 있는 회사가 전 세계에 어디 있을까?”라는 서정진의 말이 셀트리온의 경쟁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 세상의 인재 vs 셀트리온의 인재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1995년 "천재 한 명이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라는 천재 경영론을 설파했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똑똑한 인재만이 아마존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여겼다. 서정진이 생각하는 인재는 세상이 생각하는 인재와 좀 다르다. 그는 성공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있다면 똑똑하고 잘난 것이라고 말한다. 똑똑해도 똑똑하지 않아 보이고 잘나도 잘나지 않아 보여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서정진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보다 협업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을 인재로 여겼다. 우수한 인력을 가려 뽑을 수 없었던 초창기에 셀트리온은 다른 회사는 잘 알아보지 못했던 화합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뽑았다. 그는 채용 시장에서 덜 매력적으로 평가됐던 사람들의 자존감을 세워주고 채용한 후에는 믿고 일을 맡겼다. 특별히 불러주는 데가 없었던 이들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셀트리온의 충성스러운 직원이 되었다. 셀트리온은 원칙 준수, 창의성, 도전정신, 세계 제일주의 이 네 가지를 인재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원칙 준수는 나머지 세 가지를 아우르는 가치이다. 원칙을 지키지 않는 창의성과 도전, 세계관은 제약 바이오산업에서는 용인되지 않는다. 새로운 발상으로 도전과 일탈을 즐기는 인재는 10만 명을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망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게 서정진의 인재관이다.

 

# 그들은 어떻게 일하는가? - 셀트리온 컬처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임직원들에게 프로액티브(proactive) 정신을 강조한다. 전문성은 기본이고 주도적으로 일하라는 뜻이다. 주체적인 태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똑똑한 사람들은 맡은 임무를 훌륭하게 해낼지는 몰라도 그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에 비한다면 셀트리온 직원들은 슈퍼 프로액티브한 사람들로서 회사가 강조한 적도 없는데 직원들이 알아서 주도적으로 일한다. 구글에서 일하는 직원을 구글러’, 아마존에서 일하는 직원을 아마조니언이라고 부른다면 셀트리온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셀트리오니언’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그들은 한 번도 해보지 않는 일에 도전하고 바이오 업계의 통념을 깨뜨리는 혁신적인 방식으로 속도감 있게 일을 추진한다. 코로나 19 사태가 발생하자 셀트리온은 유럽 전역에 파견된 직원 전체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지만 직원들은 철수 명령을 거부했다. 결국 상황이 심각한 이탈리아에서 근무하는 직원만 강제로 철수시켰다는 일화는 여러모로 생각해 볼만하다. 셀트리오니언이 자기를 슈퍼 프로 액티브하게 해 내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월드 클래스를 자부하며 모두가 함께 일하며 믿고 내버려 두는 셀트리온 특유의 조직문화 때문이다.

 

# 무엇이 이들을 기꺼이 일하게 하는가? - 회장보다 월급이 많은 직원

셀트리온은 직장인이 기대할 수 있는 소득의 한계를 무너뜨렸다. 서정진은 월급쟁이로 살아선 돈 벌기 힘들다. 돈 벌려면 사업을 해야 한다는 통념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서 회사를 키우면 직급에 상관없이 보상을 받는 조직을 만들려고 했다. 그 결과가 스톡옵션 제도이다. 셀트리온의 스톡옵션 제도는 비상식적일 만큼 파격적이다. 스톡옵션 행사로 163억 원을 받은 박성도 셀트리온 고문을 비롯해 셀트리온 헬스케어 김 모 차장은 78억 원, 이 모 과장은 44억 원, 최 모 차장은 24억 원, 현 모 차장은 24억 원을 받았다. 서정진은 스톡옵션이 회사 성장의 핵심 원동력이라고 믿고 있다. 다른 기업의 경우 대체로 스톡옵션은 효과가 일시적이었고 업무 성과를 높이지 못했다. 스톡옵션 지급은 동기 저하, 사업 정체, 주가 하락, 퇴사, 이 시나리오로 전개되는 것이 보편적인데 셀트리온의 경우는 그 반대였다. 사명감의 강화에 사업 성장과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스톡옵션을 개인의 동기유발보다는 전체 연대감을 형성하는 용도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셀트리오니언은 개인의 성장과 회사의 미래를 동일시한다. 그 덕분에 스톡옵션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 무엇이 오늘의 셀트리온을 만들었는가?

세계 최초의 바이오시밀러 ‘램시마’가 탄생했을 때 셀트리온은 스스로를 퍼스트 무버(First Mover)라고 불렀다. 이 퍼스트 무버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창의적인 선도자를 말한다. 지금은 바이오시밀러 중 가장 빨리 출시된 제품을 업계에서 자연스레 퍼스트 무버라고 부른다.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 업계에서 게임의 룰을 만들었고 새로운 경쟁체제를 구축했다. 이러한 성과는 비상식적일 만큼 보상한다. 기준은 스스로 정한다. 본질에 집중한다. 사람을 우선한다. 결정을 미루지 않는다는 경영원칙과 목표는 원대하게 공표하고 현실화한다. 타임라인은 바꿀 수 없다. 문제는 그날 해결한다. 답은 현장에서 찾는다. 정면 돌파한다는 업무 방식, 그리고 가볍고 빠르고 단순하게 한다. ‘슈퍼 프로액티브’ 하게 한다. 될지 안 될지 재지 않는다. 믿고 기다린다. ‘월드클래스’ 긍지로 일한다라는 조직문화에서 나온 결과라는 사실을 세밀하게 밝힌 것이 셀트리오니즘의 내용이다.